콰인의 예정조화
철학논총 25(3): 99-117, 새한철학회 2001
간추림
20세기 철학의 한 지류로 등장한 논리경험론은 언어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인식과 존재를 해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논리경험론의 완성자라고 알려져 있는 콰인은 특히 언어적 표현의 ‘의미’를 비의미론적 용어에 의거하여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이 설명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의미의 상호주관성을 해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콰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식주체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각유사성표준들의 예정조화를 도입한다. 이 글의 목적은 그가 어떤 탐구과정을 통해 이 예정조화를 주장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콰인은 비언어적 신경유입에서 어떻게 언어적 의미가 생성될 수 있었는지 해명하기 위해, 먼저 신경유입에서 언어로 가는 중간다리로서 관찰문장을 도입한다. 그런 다음 그는 이 관찰문장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적 의미를 명시적으로 정의한다: 관찰문장의 의미는 그것의 자극의미이다. 그리고 한 주체에게 어떤 한 문장의 자극의미란 현재의 신경유입에 응답하여 그 문장에 동의하거나 이의하는 그 주체의 성향이다. 콰인에 의하면, 한 주체가 두 신경유입에 대해 유사하게 반응하곤 하는 것은 그 주체의 선천적 지각유사성표준 때문인데, 콰인의 예정조화설은 두 주체가 가진 지각유사성표준이 잘 맞추어진 시계처럼 조화롭게 작동한다는 논제이다.
1. 들어가는 말
철학이 창시될 때부터, 철학자들은 인간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요소를 규정․해명하려고 노력했다.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모이는’ 동물이다, 등과 같은 표현들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말’, ‘생각’, ‘모임’은 20세기 철학의 흐름을 결정지었던 개념들이다. 논리경험론은 언어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인식과 존재를 해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현상학은 의식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사회비판이론은 사회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인식과 존재를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언어․의식․사회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해, 논리경험론자는 언어의 논리적 질서를 분석하고, 현상학자는 의식을 현상학적으로 환원시키고, 사회비판이론가는 사회를 해방적 이성에 비추어 비판한다. 20세기 철학은, 말하자면, 언어․의식․사회를 분석․환원․비판하는 철학이다.
콰인(W. V. Quine; 1908-2000)은 논리경험론의 완성자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철학은 언어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존재론이나 인식론을 하기 위해 먼저 언어철학을 해야 했으며, 그의 존재론과 인식론은 그의 언어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언어철학자들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동시에 흔히 예사롭게 간과해 버리는 과제는 언어적 표현의 ‘의미’(meaning)를 비의미론적 용어에 의거하여 정의․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설명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의미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해명하는 것이다. 콰인은, 언어철학의 ‘슈퍼스타’답게, 이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문제의 근원에까지 주도면밀하게 파고들어 갔다. 그는 언어의 상호주관성을 해명하기 위해 ‘원초적 번역’(radical translation)이라는 매우 획기적인 사고실험을 고안해 내었다. 그는 이 사고실험을 때때로 사변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언어의 상호주관성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해 낸다. 그런데 다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이 설명에서 인식주체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각유사성표준들(standards of perceptual similarity)의 예정조화를 도입한다.
원래 ‘예정조화’(preestablished harmony)는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가 단자들(monads) 사이의 교류 즉 의사소통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특히 라이프니츠가 주목한 예정조화는 정신을 구성하는 우세한 단자와 육체를 구성하는 열등한 단자 사이의 조화이다. 그는 「신체계」(1695)에서 자기 이론을 ‘일치이론’(theory of agreement)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일치이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정신의 본성은 (다소간 명확함의 [정도를] 지닌 채) 매우 정확한 방식으로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이 혼자 힘으로 산출해 내는 표상들의 계열은, 자연적으로, 세계 그 자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의 계열에 대응될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신체계」를 발표한 후, 이 저술의 주내용을 요약하여 바스나지(Henri Basnage de Beauval)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바로 이 편지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기 이론을 ‘예정조화의 방법’이라 표현했고,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유명한 두 시계 유비를 소개해 놓았다.
라이프니츠는 정신현상을 설명하는 당시의 이론들, 예컨대 스콜라식 유출이론(influx theory), 데카르트식 기회원인론(occasionalism), 스피노자식 유물론 등에 만족할 수 없었다. 기회원인론은 라 포르지(La Forge)와 말브랑쉬(Malebranche; 1638-1715)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라이프니츠는 이 이론을 종종 ‘데카르트식 이론’이라 불렀고, 스피노자(Spinoza; 1632-77)의 이론도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기회원인론에 의하면, 정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오직 신에게만 있고, 따라서 정신과 육체의 연합은 신의 ‘수시적인 협력’(occasional assistance)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기회원인론은 정신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세계에 매순간 ‘무대장치로부터 [튀어 나오는] 신’(deus ex machina)을 불러들인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은 이러한 임시방편적인 기회원인론의 대안으로 제시된 이론이다.
라이프니츠는 스콜라식 유출이론처럼 외부로부터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영향을 요청하거나, 기회원인론처럼 초자연적 힘의 수시적 협력을 요청하지 않으면서, 주체들 사이의 연합과 의사소통을 설명하기를 원했다. 콰인의 예정조화 역시 이런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는 의미의 상호주관성이 대화하는 화자와 청자 간 상호작용의 결과이거나, 초월적인 어떤 것의 수시적 협력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호작용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기보다, 한 주체와 그 주체 외부의 주위환경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며, 인간두뇌 속에 초월적인 어떤 것이 있다고 믿을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언어의 상호주관성을 설명하려 했던 콰인이 어떤 탐구과정을 통해 예정조화를 도입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필자는 제2절에서, 콰인이 근세 영국경험론자들의 ‘관념’(ideas) 대신 채택한, ‘신경유입’(neural intakes)에 대해 해설해 놓았다. 그런 다음 이 신경유입에 직접적으로 조건화된 구두적 반응을 기술해 주는 ‘관찰문장’(observational sentences)에 대해 다루었는데, 관찰문장은 언어 또는 학문으로 가는 첫 단계, 즉 원시언어이다. 제3절에서 우리는 콰인이 신경유입과 관찰문장을 연결하는 중간고리로서 도입한 ‘자극의미’(stimulus-meaning)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제4절과 제5절은 콰인이 이 자극의미의 상호주관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감정이입’(empathy)과 ‘예정조화’를 각각 분석하는 데 할애했다.
6. 나오는 말
콰인의 자연화된 인식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극으로부터 학문까지”의 연속적 연결로부터 자극과 학문 사이의 “증거적 지지 관계”(PT, 2) 또는 “증거의 흐름”(PT, 41)을 해부 및 추적하는 것이다. 콰인은 어떻게 비언어적 신경유입에서 언어적 의미가 생성될 수 있는지 심혈을 기울여 해명하고자 했다. 그에게 언어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은 인식론이나 존재론을 포함한 다양한 이론들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극작용은 공적으로 확인될 수 없는 사적 상태이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의미의 공공성 또는 상호주관성을 도출해 내는 것은 쉬운 프로젝트가 아니다. 콰인은 자극에서 언어로 가는 중간다리로서 관찰문장을 도입하였데, 이것은 언어와 이론으로 들어가는 “쐐기”(wedge; PT, 39)이다. 그리하여 응당 콰인의 문제는 관찰문장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적 의미를 명시적으로 정의하는 일로 집약된다. 이 정의를 고안함에 있어서, 콰인식 인식론이 수행해야 하는 핵심 과제는 관찰문장의 상호주관성(의미, 번역, 학습)을 정립하는 일이다. 콰인이 최종적으로 제시한 시나리오는 신경유입들에 대한 지각유사성표준의 예정조화를 도입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각 단자가 다른 단자들과 관계 맺지 않고 순수하게 내적 본성에 의해 살아가지만, 이러한 독립적 단자들로 구성된 세계가 무질서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다. 그는 신에 의한 예정조화를 통해 조화로운 우주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콰인은 우주에 대한 조화로운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한 예정조화를 도입한다. 데이빗슨이 비판했던 것처럼, 비록 콰인 인식론이 일종의 방법론적 유아론을 채택함으로써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는 인간의 세계인식 또는 세계구성이 전적으로 무질서하다고 주장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콰인은 자신의 예정조화 시나리오를 ‘학문적으로’(scientifically) 확립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자연주의적 방책을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진화론을 끄집어들이는 것이다. 콰인에 의하면, 지각유사성표준의 예정조화는 “한층 더 심층적인, 그러나 보다 불완전한 예정조화”(PTF, 160)로부터 유래한다. 이 예정조화는 ‘지각유사성과 환경 사이의 예정조화’인데, 콰인은 이것을 자연선택에 의해 설명한다(RR,19; SS; 21; PTF, 161).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자연선택은 환경의 추세와 잘 조화하도록 한 종족의 지각유사성표준을 맞추어 나간다(RLH, 576).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는 원래 정신의 표상 계열과 세계의 변화 계열 사이의 예정조화였다. 콰인이 두 주체의 지각유사성표준들 사이의 예정조화가 한 주체의 지각유사성표준과 환경 사이의 예정조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라이프니츠식 예정조화에 보다 근접하게 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식 예정조화는 신에 의해 확립된 것이지만 콰인의 그것은 자연선택에 의해 확립된 것이라는 점에서, 두 예정조화의 결과는 판이하다.
우리는 콰인에게 다윈 진화론이 거의 제일철학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제일철학은 모든 형이상학을 녹여 없애 버리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 성격은 콰인의 자연주의 인식론과 매우 잘 어울린다.
자연선택은 형이상학[을 녹이는] 다윈의 용매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 그리고 목적론을 동력인 속으로 용해시켰고, 이제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 역시 용해시킨다(PTF, 161).
콰인의 예정조화
철학논총 25(3): 99-117, 새한철학회 2001
간추림
20세기 철학의 한 지류로 등장한 논리경험론은 언어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인식과 존재를 해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논리경험론의 완성자라고 알려져 있는 콰인은 특히 언어적 표현의 ‘의미’를 비의미론적 용어에 의거하여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이 설명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의미의 상호주관성을 해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콰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식주체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각유사성표준들의 예정조화를 도입한다. 이 글의 목적은 그가 어떤 탐구과정을 통해 이 예정조화를 주장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콰인은 비언어적 신경유입에서 어떻게 언어적 의미가 생성될 수 있었는지 해명하기 위해, 먼저 신경유입에서 언어로 가는 중간다리로서 관찰문장을 도입한다. 그런 다음 그는 이 관찰문장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적 의미를 명시적으로 정의한다: 관찰문장의 의미는 그것의 자극의미이다. 그리고 한 주체에게 어떤 한 문장의 자극의미란 현재의 신경유입에 응답하여 그 문장에 동의하거나 이의하는 그 주체의 성향이다. 콰인에 의하면, 한 주체가 두 신경유입에 대해 유사하게 반응하곤 하는 것은 그 주체의 선천적 지각유사성표준 때문인데, 콰인의 예정조화설은 두 주체가 가진 지각유사성표준이 잘 맞추어진 시계처럼 조화롭게 작동한다는 논제이다.
1. 들어가는 말
철학이 창시될 때부터, 철학자들은 인간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요소를 규정․해명하려고 노력했다.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모이는’ 동물이다, 등과 같은 표현들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말’, ‘생각’, ‘모임’은 20세기 철학의 흐름을 결정지었던 개념들이다. 논리경험론은 언어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인식과 존재를 해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현상학은 의식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사회비판이론은 사회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인식과 존재를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언어․의식․사회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해, 논리경험론자는 언어의 논리적 질서를 분석하고, 현상학자는 의식을 현상학적으로 환원시키고, 사회비판이론가는 사회를 해방적 이성에 비추어 비판한다. 20세기 철학은, 말하자면, 언어․의식․사회를 분석․환원․비판하는 철학이다.
콰인(W. V. Quine; 1908-2000)은 논리경험론의 완성자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철학은 언어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존재론이나 인식론을 하기 위해 먼저 언어철학을 해야 했으며, 그의 존재론과 인식론은 그의 언어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언어철학자들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동시에 흔히 예사롭게 간과해 버리는 과제는 언어적 표현의 ‘의미’(meaning)를 비의미론적 용어에 의거하여 정의․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설명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의미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해명하는 것이다. 콰인은, 언어철학의 ‘슈퍼스타’답게, 이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문제의 근원에까지 주도면밀하게 파고들어 갔다. 그는 언어의 상호주관성을 해명하기 위해 ‘원초적 번역’(radical translation)이라는 매우 획기적인 사고실험을 고안해 내었다. 그는 이 사고실험을 때때로 사변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언어의 상호주관성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해 낸다. 그런데 다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이 설명에서 인식주체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각유사성표준들(standards of perceptual similarity)의 예정조화를 도입한다.
원래 ‘예정조화’(preestablished harmony)는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가 단자들(monads) 사이의 교류 즉 의사소통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특히 라이프니츠가 주목한 예정조화는 정신을 구성하는 우세한 단자와 육체를 구성하는 열등한 단자 사이의 조화이다. 그는 「신체계」(1695)에서 자기 이론을 ‘일치이론’(theory of agreement)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일치이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정신의 본성은 (다소간 명확함의 [정도를] 지닌 채) 매우 정확한 방식으로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이 혼자 힘으로 산출해 내는 표상들의 계열은, 자연적으로, 세계 그 자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의 계열에 대응될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신체계」를 발표한 후, 이 저술의 주내용을 요약하여 바스나지(Henri Basnage de Beauval)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바로 이 편지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기 이론을 ‘예정조화의 방법’이라 표현했고,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유명한 두 시계 유비를 소개해 놓았다.
라이프니츠는 정신현상을 설명하는 당시의 이론들, 예컨대 스콜라식 유출이론(influx theory), 데카르트식 기회원인론(occasionalism), 스피노자식 유물론 등에 만족할 수 없었다. 기회원인론은 라 포르지(La Forge)와 말브랑쉬(Malebranche; 1638-1715)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라이프니츠는 이 이론을 종종 ‘데카르트식 이론’이라 불렀고, 스피노자(Spinoza; 1632-77)의 이론도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기회원인론에 의하면, 정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오직 신에게만 있고, 따라서 정신과 육체의 연합은 신의 ‘수시적인 협력’(occasional assistance)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기회원인론은 정신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세계에 매순간 ‘무대장치로부터 [튀어 나오는] 신’(deus ex machina)을 불러들인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은 이러한 임시방편적인 기회원인론의 대안으로 제시된 이론이다.
라이프니츠는 스콜라식 유출이론처럼 외부로부터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영향을 요청하거나, 기회원인론처럼 초자연적 힘의 수시적 협력을 요청하지 않으면서, 주체들 사이의 연합과 의사소통을 설명하기를 원했다. 콰인의 예정조화 역시 이런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는 의미의 상호주관성이 대화하는 화자와 청자 간 상호작용의 결과이거나, 초월적인 어떤 것의 수시적 협력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호작용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기보다, 한 주체와 그 주체 외부의 주위환경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며, 인간두뇌 속에 초월적인 어떤 것이 있다고 믿을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언어의 상호주관성을 설명하려 했던 콰인이 어떤 탐구과정을 통해 예정조화를 도입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필자는 제2절에서, 콰인이 근세 영국경험론자들의 ‘관념’(ideas) 대신 채택한, ‘신경유입’(neural intakes)에 대해 해설해 놓았다. 그런 다음 이 신경유입에 직접적으로 조건화된 구두적 반응을 기술해 주는 ‘관찰문장’(observational sentences)에 대해 다루었는데, 관찰문장은 언어 또는 학문으로 가는 첫 단계, 즉 원시언어이다. 제3절에서 우리는 콰인이 신경유입과 관찰문장을 연결하는 중간고리로서 도입한 ‘자극의미’(stimulus-meaning)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제4절과 제5절은 콰인이 이 자극의미의 상호주관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감정이입’(empathy)과 ‘예정조화’를 각각 분석하는 데 할애했다.
6. 나오는 말
콰인의 자연화된 인식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극으로부터 학문까지”의 연속적 연결로부터 자극과 학문 사이의 “증거적 지지 관계”(PT, 2) 또는 “증거의 흐름”(PT, 41)을 해부 및 추적하는 것이다. 콰인은 어떻게 비언어적 신경유입에서 언어적 의미가 생성될 수 있는지 심혈을 기울여 해명하고자 했다. 그에게 언어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은 인식론이나 존재론을 포함한 다양한 이론들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극작용은 공적으로 확인될 수 없는 사적 상태이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의미의 공공성 또는 상호주관성을 도출해 내는 것은 쉬운 프로젝트가 아니다. 콰인은 자극에서 언어로 가는 중간다리로서 관찰문장을 도입하였데, 이것은 언어와 이론으로 들어가는 “쐐기”(wedge; PT, 39)이다. 그리하여 응당 콰인의 문제는 관찰문장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적 의미를 명시적으로 정의하는 일로 집약된다. 이 정의를 고안함에 있어서, 콰인식 인식론이 수행해야 하는 핵심 과제는 관찰문장의 상호주관성(의미, 번역, 학습)을 정립하는 일이다. 콰인이 최종적으로 제시한 시나리오는 신경유입들에 대한 지각유사성표준의 예정조화를 도입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각 단자가 다른 단자들과 관계 맺지 않고 순수하게 내적 본성에 의해 살아가지만, 이러한 독립적 단자들로 구성된 세계가 무질서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다. 그는 신에 의한 예정조화를 통해 조화로운 우주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콰인은 우주에 대한 조화로운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한 예정조화를 도입한다. 데이빗슨이 비판했던 것처럼, 비록 콰인 인식론이 일종의 방법론적 유아론을 채택함으로써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는 인간의 세계인식 또는 세계구성이 전적으로 무질서하다고 주장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콰인은 자신의 예정조화 시나리오를 ‘학문적으로’(scientifically) 확립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자연주의적 방책을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진화론을 끄집어들이는 것이다. 콰인에 의하면, 지각유사성표준의 예정조화는 “한층 더 심층적인, 그러나 보다 불완전한 예정조화”(PTF, 160)로부터 유래한다. 이 예정조화는 ‘지각유사성과 환경 사이의 예정조화’인데, 콰인은 이것을 자연선택에 의해 설명한다(RR,19; SS; 21; PTF, 161).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자연선택은 환경의 추세와 잘 조화하도록 한 종족의 지각유사성표준을 맞추어 나간다(RLH, 576).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는 원래 정신의 표상 계열과 세계의 변화 계열 사이의 예정조화였다. 콰인이 두 주체의 지각유사성표준들 사이의 예정조화가 한 주체의 지각유사성표준과 환경 사이의 예정조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라이프니츠식 예정조화에 보다 근접하게 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식 예정조화는 신에 의해 확립된 것이지만 콰인의 그것은 자연선택에 의해 확립된 것이라는 점에서, 두 예정조화의 결과는 판이하다.
우리는 콰인에게 다윈 진화론이 거의 제일철학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제일철학은 모든 형이상학을 녹여 없애 버리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 성격은 콰인의 자연주의 인식론과 매우 잘 어울린다.
자연선택은 형이상학[을 녹이는] 다윈의 용매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 그리고 목적론을 동력인 속으로 용해시켰고, 이제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 역시 용해시킨다(PTF,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