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논증될 수 없는가?
철학적 분석 10: 111-137, 분석철학회 2004
간추림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과 조화 문제는 오랫동안 철학자들을 괴롭혔던 문제들 중 하나이다. 만일 우리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둘 중에서 무엇을 취해야 하는가? 이 논문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불가능성 문제와 관련된 그간의 논쟁들을 요약한 후, 결정론을 버리고 자유의지를 취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단순히 자유의지를 하나의 자명한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대신, 결정론이 틀렸다거나,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논증을 개발할 수는 없는가? 만일 우리가 결정론으로부터 미래 사실에 관한 정리를 도출하거나 입수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정리가 틀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함으로써, 결정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론의 정리를 입수할 수 없는 한, 결정론을 경험적으로 논박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한 물리적 사건은 다른 물리적 사건을 야기하거나 그것에 의해 야기된다. 물리적 사건들 사이의 이러한 인과적 연결은 물리법칙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설사 이 물리법칙에 대한 우리의 정식화 방식이 불완전하고 가변적이라 하더라도, 물리법칙 자체는 아마도 인간 인식의 발달역사에 독립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물리법칙이 결정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인간 삶에 대해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결정론적 물리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세계 속에서는, 일단 운동법칙과 과거상태가 주어지면, 오직 하나의 미래상태만이 가능하다. 이것은 결정론적 세계 속에서는 두 개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정론적 물리법칙은 우리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행위하도록 강제한다. 대안적 미래의 부재와 물리법칙의 이러한 강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한편 행위자의 자유의지는 의도나 행위에서 그의 선택권을 전제한다. 따라서 만일 모든 사건들은 물리적 사건이고, 모든 물리적 사건들은 결정론적 운동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 세계에 자유로운 사건이 출현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면, 또는 존재해야 한다면, 이것은 이 세계에 대해 무엇을 함축하는가? 자유의지는 결정론적 엄밀 법칙의 지배를 벗어나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건들을 야기할 수 있는 특이한 사건의 존재를 요구한다. 이 특이한 사건은 아마도 흔히들 심적 사건으로 부르는 범주의 사건에 해당될 것이다. 만일 이 특이한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이 세계가 결정론적 세계가 아님을 의미하는가? 그래서 다만 현재의 물리학이 근본적으로 틀렸을 뿐인가? 아니면 이 세계가 순수 물리적 세계가 아님을 의미하는가? 그래서 이 세계는 법칙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으로 분할되어 있는가?
결정론과 자유의지 중에서 무엇을 취해야 할지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을 해결하는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은 둘 모두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van Inwagen은 이에 반대하는 매우 설득력 있는 논증을 고안했다. 제2절에서 이 논증을 짧게 다룬 후, 제3절에서 궁극적 물리법칙이 그 자체로 비결정론적 이론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이 양립불가능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을 비판할 것이다. 제4절에서 결정론(물리주의)과 자유의지의 우선성에 관한 최근 논쟁들을 요약한 다음, 제5절부터 제7절까지 결정론이 틀렸다는, 또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논증을 개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불행히도 이 시도의 성공에 대한 애초의 낙관적 전망은 이 논문의 결론부까지 계속 유지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론을 논박하거나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약간의 진척이 있었으며, 이 시도는 앞으로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8. 나오는 말
만일 양립불가능론이 옳다면, 결정론과 자유의지 모두가 동시에 참될 수는 없다. 우리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태 결정론이 틀렸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이 논증이 성공할 것이라고 내심 낙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다소 비관적 결론으로 바뀌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개념들, 그리고 그 개념들 간의 논리적 관계만으로는 둘 중 하나를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없다. 우리 선택이나 의지에 호소함으로써 결정론의 정리를 입수하는 한, 우리는 결정론이 틀렸다는 것을 실증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현실적 가능성은 없지만, 결정론적 운동방정식의 해를 구함으로써 결정론의 정리를 미리 입수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결정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담의 근거는 매우 직관적이다. D와 A(T, a)의 함축관계를 단순히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위 a와 다른 행위를 시간 T에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결정론을 버리고 자유의지를 선택할 상당한 이유를 제공해준다. 결정론을 논박하거나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우리 시도에 아무런 진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결정론을 포기하고 자유의지를 선택한다면, 이것은 물리주의에 대해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우리는 물리법칙이 원리상 결정론적이라고 가정했으므로, 결정론을 부정하는 것은 이 세계가 물리법칙의 완전한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논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나는 다른 논문에서 자유의지를 구출하기 위해 물리주의에 어떤 수정을 가해야 하는지를 검토했다. 자유의지는 심리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심성의 무법칙성을 요구한다. 자유의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심물 수반을 포기하고, 물리적 차이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역사적 차이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 심성의 인과적 효력을 인정하기 위해 역사적 차이가 물리적으로 다른 사건을 야기할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자유의지는 논증될 수 없는가?
철학적 분석 10: 111-137, 분석철학회 2004
간추림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과 조화 문제는 오랫동안 철학자들을 괴롭혔던 문제들 중 하나이다. 만일 우리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둘 중에서 무엇을 취해야 하는가? 이 논문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불가능성 문제와 관련된 그간의 논쟁들을 요약한 후, 결정론을 버리고 자유의지를 취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단순히 자유의지를 하나의 자명한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대신, 결정론이 틀렸다거나,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논증을 개발할 수는 없는가? 만일 우리가 결정론으로부터 미래 사실에 관한 정리를 도출하거나 입수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정리가 틀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함으로써, 결정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론의 정리를 입수할 수 없는 한, 결정론을 경험적으로 논박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한 물리적 사건은 다른 물리적 사건을 야기하거나 그것에 의해 야기된다. 물리적 사건들 사이의 이러한 인과적 연결은 물리법칙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설사 이 물리법칙에 대한 우리의 정식화 방식이 불완전하고 가변적이라 하더라도, 물리법칙 자체는 아마도 인간 인식의 발달역사에 독립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물리법칙이 결정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인간 삶에 대해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결정론적 물리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세계 속에서는, 일단 운동법칙과 과거상태가 주어지면, 오직 하나의 미래상태만이 가능하다. 이것은 결정론적 세계 속에서는 두 개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정론적 물리법칙은 우리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행위하도록 강제한다. 대안적 미래의 부재와 물리법칙의 이러한 강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한편 행위자의 자유의지는 의도나 행위에서 그의 선택권을 전제한다. 따라서 만일 모든 사건들은 물리적 사건이고, 모든 물리적 사건들은 결정론적 운동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 세계에 자유로운 사건이 출현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면, 또는 존재해야 한다면, 이것은 이 세계에 대해 무엇을 함축하는가? 자유의지는 결정론적 엄밀 법칙의 지배를 벗어나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건들을 야기할 수 있는 특이한 사건의 존재를 요구한다. 이 특이한 사건은 아마도 흔히들 심적 사건으로 부르는 범주의 사건에 해당될 것이다. 만일 이 특이한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이 세계가 결정론적 세계가 아님을 의미하는가? 그래서 다만 현재의 물리학이 근본적으로 틀렸을 뿐인가? 아니면 이 세계가 순수 물리적 세계가 아님을 의미하는가? 그래서 이 세계는 법칙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으로 분할되어 있는가?
결정론과 자유의지 중에서 무엇을 취해야 할지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을 해결하는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은 둘 모두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van Inwagen은 이에 반대하는 매우 설득력 있는 논증을 고안했다. 제2절에서 이 논증을 짧게 다룬 후, 제3절에서 궁극적 물리법칙이 그 자체로 비결정론적 이론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이 양립불가능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을 비판할 것이다. 제4절에서 결정론(물리주의)과 자유의지의 우선성에 관한 최근 논쟁들을 요약한 다음, 제5절부터 제7절까지 결정론이 틀렸다는, 또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논증을 개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불행히도 이 시도의 성공에 대한 애초의 낙관적 전망은 이 논문의 결론부까지 계속 유지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론을 논박하거나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약간의 진척이 있었으며, 이 시도는 앞으로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8. 나오는 말
만일 양립불가능론이 옳다면, 결정론과 자유의지 모두가 동시에 참될 수는 없다. 우리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태 결정론이 틀렸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이 논증이 성공할 것이라고 내심 낙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다소 비관적 결론으로 바뀌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개념들, 그리고 그 개념들 간의 논리적 관계만으로는 둘 중 하나를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없다. 우리 선택이나 의지에 호소함으로써 결정론의 정리를 입수하는 한, 우리는 결정론이 틀렸다는 것을 실증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현실적 가능성은 없지만, 결정론적 운동방정식의 해를 구함으로써 결정론의 정리를 미리 입수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결정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담의 근거는 매우 직관적이다. D와 A(T, a)의 함축관계를 단순히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위 a와 다른 행위를 시간 T에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결정론을 버리고 자유의지를 선택할 상당한 이유를 제공해준다. 결정론을 논박하거나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우리 시도에 아무런 진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결정론을 포기하고 자유의지를 선택한다면, 이것은 물리주의에 대해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우리는 물리법칙이 원리상 결정론적이라고 가정했으므로, 결정론을 부정하는 것은 이 세계가 물리법칙의 완전한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논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나는 다른 논문에서 자유의지를 구출하기 위해 물리주의에 어떤 수정을 가해야 하는지를 검토했다. 자유의지는 심리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심성의 무법칙성을 요구한다. 자유의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심물 수반을 포기하고, 물리적 차이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역사적 차이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 심성의 인과적 효력을 인정하기 위해 역사적 차이가 물리적으로 다른 사건을 야기할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