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 차이는 역사적 차이
철학연구 92: 31-57, 대한철학회 2004
간추림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과 심신수반을 동시에 받아들일 경우 이 세계에서 심적 사건이 자유롭게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의지를 옹호하고자 한다면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을 포기하든지 심신수반을 부정해야 한다. 많은 심리철학자들은 심신수반을 부정할 경우 심적 인과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길이 없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내용 외부주의의 함축을 극대화할 경우 급기야 수반을 거절해야 한다는 데 도달하게 된다. 급진적 외부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심적 차이가 역사적 차이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심적 속성은 어떻게 인과적 효과를 낼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심적 내용이 어떻게 행위의 인과적 설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주목한다. 내용은 원래 행위의 차이를 추적하기 위해 도입되었기 때문에 내용의 차이가 인과적 차이를 낳는다는 주장은 거의 분석적으로 참되다. 우리는 이 주장에 현실적 정당성을 주기 위해서 역사적으로 다른 사건들은 물리적으로 다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을 추가할 경우 심적 속성이 어떻게 인과적 힘을 가질 수 있는가는 자연스럽게 해명된다.
1. 들어가는 말
일반적으로 물리주의자들은 심적 속성이 물리적 속성에 수반된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물리적 사건들의 결정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단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을 받아들이면, 모든 유형의 심신수반은 심적 사건의 자유로운 발생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자유의지를 옹호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을 포기하든지, 심신수반을 부정해야 한다. 한편 비록 모든 사건들의 결정론은 아니지만, 물리적 사건들만의 결정론은 근본 물리학의 이념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선택은 물리학의 이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반을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거부되어야 하는 수반은 개인의 심적 속성과 그의 신체 속성 사이의 수반뿐만 아니라, 전체 세계의 심적 속성과 그것의 물리적 속성의 수반까지도 포함된다.
수반이 요구하는 것은 심적 차이가 현재의 물리적 차이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신체 안이든 세계 어딘가이든, 현재 물리적 차이가 없을 경우, 심적 차이도 사라지게 된다. 김재권은 심신수반을 부정하면 심적 인과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길이 없다고 판단할 정도 수반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이것은 데이빗슨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반면 수반을 거부하는 것은 비록 현재의 물리적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거기에 심적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내용 외부주의의 함축을 극대화할 경우 급기야 수반을 거절해야 한다는 데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외부주의의 통찰을 받아들여 과거의 물리적 차이가 현재의 심적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심신수반을 배제하는 이유는 과거 물리적 속성이 현재의 물리적 속성에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적 차이가 역사적 차이에 놓여 있다는 이 제안은 심성이 물성에 의해 실현된다는 통찰을 여전히 유지한다.
이 논문은 이 제안을 수용할 다양한 이유와 그것을 옹호하는 한두 가지 형이상학적 통찰들을 제공한다. 우리는 김재권이 제기한 심적 인과의 문제들을 요약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가 요약한 심적 인과의 세 문제는 인과적 배제의 문제, 내용 외부주의의 문제, 심적 무법칙성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내내 염두에 두면서 심적 속성의 인과적 유효성을 구명할 것이다. 김재권은 인과적 배제의 문제에 우선 집중하지만, 우리는 후자의 두 문제를 먼저 다룬 후 전자를 해결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그래서 제3절에서 제5절까지는 심적 속성과 내용 및 행위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외부주의에 이르는 긴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6절은 심적 속성이 어떻게 인과적 효과를 낼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데 할애한다. 우리는 이 과제에 접근하기 위해 이미 심적 내용이 어떻게 행위의 인과적 설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주목했다. 한 심리현상에 다른 심적 내용을 부여하는 것은 그 현상이 다른 심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내용을 심적 속성과 동일시한다. 한편 내용은 행위의 차이를 추적하기 위해 도입한 이론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내용의 차이가 있는 곳에 인과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거의 정의에 의해서 참되다. 이것은 물리량의 차이가 있는 곳에 인과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정의에 의해서 참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적 차이가 내용의 차이를 낳는다고 가정했고, 내용이론은 정의상 내용 차이가 행위 차이를 낳을 것을 요구한다. 이 가정과 요구는 결국 역사적 차이가 행위의 차이를 야기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이론적 함축이 현실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적 차이가 인과적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가정을 추가할 경우 심적 속성이 어떻게 인과적 힘을 가질 수 있는가는 자연스럽게 해명된다. 제7절에서는 이 가정의 함축을 몇 사고실험을 통해 설명한 후, 나오는 말에서 심적 인과의 세 문제들이 어떻게 해소 또는 해결되는지를 요약했다.
8. 나오는 말
여태 진행된 우리의 탐구가 옳다면, 이 세계를 쿼크와 렙톤 및 게이지 입자들로 완전히 해체한 후, 일순간 모든 물리적 측면에서 완전히 동일한 새 세계를 재구축했다 하더라도,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자유의지나 사고를 지니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우리 탐구는 실체일원론의 폐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재고가 요구되는 것은 다만 점차 그 지지자를 넓히고 있는 물리주의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물리주의(심신수반과 인과적 폐쇄성)를 가정하지 않은 채 심적 인과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그 문제들에 대한 우리 해결책을 요약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내용 외부주의의 문제: 내용은 행위들 사이의 인과적 관련을 추적하기 위해 도입한 이론적 구성물이다. 그래서 차별화된 내용들은, 정의에 의해서, 다른 행위를 낳는다. 그런데 지각적․사회적 요인들은 내용의 차별화에 연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외부적 요인들이 다른 행위를 낳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은 거의 분석적으로 참되다. 그러나 이러한 넓은 내용이 인과적 힘을 지닌다는 것은 단지 내용이론의 규범적 요구일 뿐이다. 이 요구에 부응하여 우리는 주체 피부 안팎의 역사가 인과적 힘을 지닌다는 가설을 도입했다. 물론 이 가설을 논리적으로 또는 물리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 가설을 받아들일 경우 심적 속성의 인과적 효력을 이해할 근거를 얻게 된다.
그 다음 심적 무법칙성의 문제: 심적 인과작용의 원천은 역사의 인과적 힘이다. 그러나 역사의 힘은 물리학의 운동법칙이 담보해주는 역학적 인과력의 일부가 아니다. 비유적으로 말해, 역사는 마치 태엽처럼 사람과 세계를 움직이지만, 역사의 태엽이 어떻게 감기고 풀리는지는 법칙의 범위를 벗어난다. (아마도 그것은 주체의 현상학에 속할 것이다.) 이 역사의 힘을 도입할 경우, 심적 인과작용은 심리법칙이나 물리법칙을 예화하지 않은 채, 사건과 사건을 관련지울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심성이 인과적으로 유효하면서 동시에 무법칙적이라는 상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서 애석하지만 인과성의 법칙적 성격은 포기해야 한다.
끝으로 인과적 배제의 문제: 이 문제는 오직 물리적 속성만 가지는 순수 물리적 사건들 사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원인 사건이 물리적 속성과 심적 속성을 동시에 가질 경우이다. 이 경우 원인 사건에는 물리적 속성에 수반되지 않는 심적 속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의 현재 물리적 속성은 전체 속성을 포괄하지 못한다. 만일 사건의 전체 속성만이 해당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면, 사건의 물리적 속성은 해당 결과를 야기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한 사건의 전체 속성은 물리적 속성과 심적 속성의 단순한 물리적 조합이 아니다. 그래서 가령 이 책을 들어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나의 행위에서 오직 물리적 원인만을 추출하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다. 달리 말해 이 행위의 심적 원인을 배제시키는 모종의 물리적 원인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건은 언제 물리적 속성과 심적 속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한 사건이 전체 세계와 결부된 광역 사건이 될 때이다. 그리하여 내 신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계가 갑자기 사라질 경우 내가 여전히 사고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그 때 내 사고는 지역적 사건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심적 차이는 역사적 차이
철학연구 92: 31-57, 대한철학회 2004
간추림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과 심신수반을 동시에 받아들일 경우 이 세계에서 심적 사건이 자유롭게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의지를 옹호하고자 한다면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을 포기하든지 심신수반을 부정해야 한다. 많은 심리철학자들은 심신수반을 부정할 경우 심적 인과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길이 없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내용 외부주의의 함축을 극대화할 경우 급기야 수반을 거절해야 한다는 데 도달하게 된다. 급진적 외부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심적 차이가 역사적 차이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심적 속성은 어떻게 인과적 효과를 낼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심적 내용이 어떻게 행위의 인과적 설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주목한다. 내용은 원래 행위의 차이를 추적하기 위해 도입되었기 때문에 내용의 차이가 인과적 차이를 낳는다는 주장은 거의 분석적으로 참되다. 우리는 이 주장에 현실적 정당성을 주기 위해서 역사적으로 다른 사건들은 물리적으로 다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을 추가할 경우 심적 속성이 어떻게 인과적 힘을 가질 수 있는가는 자연스럽게 해명된다.
1. 들어가는 말
일반적으로 물리주의자들은 심적 속성이 물리적 속성에 수반된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물리적 사건들의 결정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단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을 받아들이면, 모든 유형의 심신수반은 심적 사건의 자유로운 발생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자유의지를 옹호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물리적 사건의 결정론을 포기하든지, 심신수반을 부정해야 한다. 한편 비록 모든 사건들의 결정론은 아니지만, 물리적 사건들만의 결정론은 근본 물리학의 이념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선택은 물리학의 이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반을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거부되어야 하는 수반은 개인의 심적 속성과 그의 신체 속성 사이의 수반뿐만 아니라, 전체 세계의 심적 속성과 그것의 물리적 속성의 수반까지도 포함된다.
수반이 요구하는 것은 심적 차이가 현재의 물리적 차이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신체 안이든 세계 어딘가이든, 현재 물리적 차이가 없을 경우, 심적 차이도 사라지게 된다. 김재권은 심신수반을 부정하면 심적 인과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길이 없다고 판단할 정도 수반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이것은 데이빗슨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반면 수반을 거부하는 것은 비록 현재의 물리적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거기에 심적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내용 외부주의의 함축을 극대화할 경우 급기야 수반을 거절해야 한다는 데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외부주의의 통찰을 받아들여 과거의 물리적 차이가 현재의 심적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심신수반을 배제하는 이유는 과거 물리적 속성이 현재의 물리적 속성에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적 차이가 역사적 차이에 놓여 있다는 이 제안은 심성이 물성에 의해 실현된다는 통찰을 여전히 유지한다.
이 논문은 이 제안을 수용할 다양한 이유와 그것을 옹호하는 한두 가지 형이상학적 통찰들을 제공한다. 우리는 김재권이 제기한 심적 인과의 문제들을 요약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가 요약한 심적 인과의 세 문제는 인과적 배제의 문제, 내용 외부주의의 문제, 심적 무법칙성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내내 염두에 두면서 심적 속성의 인과적 유효성을 구명할 것이다. 김재권은 인과적 배제의 문제에 우선 집중하지만, 우리는 후자의 두 문제를 먼저 다룬 후 전자를 해결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그래서 제3절에서 제5절까지는 심적 속성과 내용 및 행위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외부주의에 이르는 긴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6절은 심적 속성이 어떻게 인과적 효과를 낼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데 할애한다. 우리는 이 과제에 접근하기 위해 이미 심적 내용이 어떻게 행위의 인과적 설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주목했다. 한 심리현상에 다른 심적 내용을 부여하는 것은 그 현상이 다른 심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내용을 심적 속성과 동일시한다. 한편 내용은 행위의 차이를 추적하기 위해 도입한 이론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내용의 차이가 있는 곳에 인과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거의 정의에 의해서 참되다. 이것은 물리량의 차이가 있는 곳에 인과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정의에 의해서 참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적 차이가 내용의 차이를 낳는다고 가정했고, 내용이론은 정의상 내용 차이가 행위 차이를 낳을 것을 요구한다. 이 가정과 요구는 결국 역사적 차이가 행위의 차이를 야기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이론적 함축이 현실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적 차이가 인과적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가정을 추가할 경우 심적 속성이 어떻게 인과적 힘을 가질 수 있는가는 자연스럽게 해명된다. 제7절에서는 이 가정의 함축을 몇 사고실험을 통해 설명한 후, 나오는 말에서 심적 인과의 세 문제들이 어떻게 해소 또는 해결되는지를 요약했다.
8. 나오는 말
여태 진행된 우리의 탐구가 옳다면, 이 세계를 쿼크와 렙톤 및 게이지 입자들로 완전히 해체한 후, 일순간 모든 물리적 측면에서 완전히 동일한 새 세계를 재구축했다 하더라도,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자유의지나 사고를 지니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우리 탐구는 실체일원론의 폐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재고가 요구되는 것은 다만 점차 그 지지자를 넓히고 있는 물리주의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물리주의(심신수반과 인과적 폐쇄성)를 가정하지 않은 채 심적 인과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그 문제들에 대한 우리 해결책을 요약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내용 외부주의의 문제: 내용은 행위들 사이의 인과적 관련을 추적하기 위해 도입한 이론적 구성물이다. 그래서 차별화된 내용들은, 정의에 의해서, 다른 행위를 낳는다. 그런데 지각적․사회적 요인들은 내용의 차별화에 연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외부적 요인들이 다른 행위를 낳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은 거의 분석적으로 참되다. 그러나 이러한 넓은 내용이 인과적 힘을 지닌다는 것은 단지 내용이론의 규범적 요구일 뿐이다. 이 요구에 부응하여 우리는 주체 피부 안팎의 역사가 인과적 힘을 지닌다는 가설을 도입했다. 물론 이 가설을 논리적으로 또는 물리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 가설을 받아들일 경우 심적 속성의 인과적 효력을 이해할 근거를 얻게 된다.
그 다음 심적 무법칙성의 문제: 심적 인과작용의 원천은 역사의 인과적 힘이다. 그러나 역사의 힘은 물리학의 운동법칙이 담보해주는 역학적 인과력의 일부가 아니다. 비유적으로 말해, 역사는 마치 태엽처럼 사람과 세계를 움직이지만, 역사의 태엽이 어떻게 감기고 풀리는지는 법칙의 범위를 벗어난다. (아마도 그것은 주체의 현상학에 속할 것이다.) 이 역사의 힘을 도입할 경우, 심적 인과작용은 심리법칙이나 물리법칙을 예화하지 않은 채, 사건과 사건을 관련지울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심성이 인과적으로 유효하면서 동시에 무법칙적이라는 상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서 애석하지만 인과성의 법칙적 성격은 포기해야 한다.
끝으로 인과적 배제의 문제: 이 문제는 오직 물리적 속성만 가지는 순수 물리적 사건들 사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원인 사건이 물리적 속성과 심적 속성을 동시에 가질 경우이다. 이 경우 원인 사건에는 물리적 속성에 수반되지 않는 심적 속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의 현재 물리적 속성은 전체 속성을 포괄하지 못한다. 만일 사건의 전체 속성만이 해당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면, 사건의 물리적 속성은 해당 결과를 야기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한 사건의 전체 속성은 물리적 속성과 심적 속성의 단순한 물리적 조합이 아니다. 그래서 가령 이 책을 들어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나의 행위에서 오직 물리적 원인만을 추출하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다. 달리 말해 이 행위의 심적 원인을 배제시키는 모종의 물리적 원인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건은 언제 물리적 속성과 심적 속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한 사건이 전체 세계와 결부된 광역 사건이 될 때이다. 그리하여 내 신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계가 갑자기 사라질 경우 내가 여전히 사고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그 때 내 사고는 지역적 사건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