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생산수단
마르크스에게 생산의 바탕은 사람의 노동이지만 엘륄에게 그것은 자동화와 정보화 기술이다. 그는 기술 자체가 차츰 자율성을 띠게 되어 사람 사회와 비슷한 지위에 오르고 있음을 경고했다. 나아가 사람이 기술을 잘 헤아릴 수 없게 되어 기술은 보이지 않은 신비한 힘을 얻는다. 사람은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에서 벗어나 자연을 섬기는 것을 겨우 멈추었지만 이제는 기술을 섬긴다.
1831년 헤겔이 죽자 제자들은 나이든 헤겔 우파와 젊은 헤겔 좌파로 갈라져 헤겔 철학을 이어나갔다. 포이어바흐는 헤겔 좌파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오직 물질 자연만이 실재한다는 포이어바흐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연 세계 자체가 하느님 없이 완성되어 간다는 유물주의 변증법에 이르렀다. 1847년 런던에서 국제공산주의자연맹이 결성되자 1848년 마르크스는 이 연맹의 강령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체계화하여 1867년 <자본론> 제1권을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연법칙에 바탕을 둔 경제운동법칙을 드러내려 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했듯이 사물의 본모습 안에 근본 모순과 근본 갈등이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 물이 끓다가 나중에 증기가 되듯이 양의 변화가 쌓이면 질의 변화 곧 혁명이 벌어진다. 물질 관계 곧 생산 관계에 따라 역사는 원시 공동 사회, 고대 노예 사회, 중세 봉건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미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회 순서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생각한 역사의 운동법칙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마음은 물질의 바탕 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제 홀로 앎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이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성찰하려면 우리가 노동하고 있는 자리의 물질 관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마음을 특징짓는 것은 노동 활동이며 이 노동 활동은 물질의 질서와 구조 안에서 이뤄진다. 물질 질서란 천연자원, 노동 도구, 노동 기술 등과 같은 ‘생산 요인들’과 계급들이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 곧 ‘생산 관계들’을 말한다. 생산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산이다. 고대 노예는 소유권이 없고 생산품도 배당받지 않는다. 중세 농노는 농기구를 갖고 약간의 수확을 배당받는다. 근대 노동자는 더 많은 소유권을 갖지만 자기 노동이 생산한 부가가치를 대부분 자본가에게 넘겨야 한다. 내 노동으로 만든 것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때 또는 내 것이 나에게 떨어져 나갈 때 나는 ‘소외’를 느낀다. 나는 강제로, 마지못해 일하고, 그 일의 결과는 나에게 떨어져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 나는 내 실존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일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노동을 사고파는 ‘매춘부’로 보게 된다. 이렇게 나는 자연으로부터, 나로부터, 사람됨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외된다. 자본가가 챙기는 잉여 가치는 ‘착취’며 이것은 자본주의 체계 안에 모순을 이룬다. 자본가는 다음 단계의 혁명 동력을 쌓게 하는 자연 현상이다. 자본가에 대항하려고 노동자들은 자기 계급을 깨닫고 단체를 이루게 된다.

프랑스 보르도의 철학자 쟈크엘륄은 “오늘날 마르크스가 돌아온다면, 우리 사회를 특징짓기 위해 그는 어떤 현상을 받아들일까? 그것은 자본도 자본주의도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기술적인 증식 현상이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이 우리 시대의 현상들 전체를 설명하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미지 출처 - 보기)
마르크스는 기술 문명의 두 가지 길을 보여주었다. 노동자 조직이 세계를 다스린다면 기술 문명은 우리를 유토피아에 이르게 할 것이다. 지금처럼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가 계속된다면 우리 삶을 갈아 만든 기술 문명은 우리를 끊임없이 따돌릴 것이다. 자크 엘륄은 처음에 마르크스의 생각들을 따라가며 기술의 문제를 성찰했다. 그는 자본주의보다 더 센 힘을 알게 되었고 1954년 <기술 곧 시대의 쟁점>에서 그것이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술이다. 그는 소련의 공장과 자동차가 미국의 공장 및 자동차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소련이든 미국이든 노동자들은 더 많이 만들도록 몰리고 그들은 삶의 안락을 좇는다. 마르크스에게 생산의 바탕은 사람의 노동이지만 엘륄에게 그것은 자동화와 정보화 기술이다. 그는 기술 자체가 차츰 자율성을 띠게 되어 사람 사회와 비슷한 지위에 오르고 있음을 경고했다. 나아가 사람이 기술을 잘 헤아릴 수 없게 되어 기술은 보이지 않은 신비한 힘을 얻는다. 사람은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에서 벗어나 자연을 섬기는 것을 겨우 멈추었지만 이제는 기술을 섬긴다. 클라라 20190819
143. 생산수단
1831년 헤겔이 죽자 제자들은 나이든 헤겔 우파와 젊은 헤겔 좌파로 갈라져 헤겔 철학을 이어나갔다. 포이어바흐는 헤겔 좌파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오직 물질 자연만이 실재한다는 포이어바흐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연 세계 자체가 하느님 없이 완성되어 간다는 유물주의 변증법에 이르렀다. 1847년 런던에서 국제공산주의자연맹이 결성되자 1848년 마르크스는 이 연맹의 강령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체계화하여 1867년 <자본론> 제1권을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연법칙에 바탕을 둔 경제운동법칙을 드러내려 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했듯이 사물의 본모습 안에 근본 모순과 근본 갈등이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 물이 끓다가 나중에 증기가 되듯이 양의 변화가 쌓이면 질의 변화 곧 혁명이 벌어진다. 물질 관계 곧 생산 관계에 따라 역사는 원시 공동 사회, 고대 노예 사회, 중세 봉건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미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회 순서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생각한 역사의 운동법칙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마음은 물질의 바탕 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제 홀로 앎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이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성찰하려면 우리가 노동하고 있는 자리의 물질 관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마음을 특징짓는 것은 노동 활동이며 이 노동 활동은 물질의 질서와 구조 안에서 이뤄진다. 물질 질서란 천연자원, 노동 도구, 노동 기술 등과 같은 ‘생산 요인들’과 계급들이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 곧 ‘생산 관계들’을 말한다. 생산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산이다. 고대 노예는 소유권이 없고 생산품도 배당받지 않는다. 중세 농노는 농기구를 갖고 약간의 수확을 배당받는다. 근대 노동자는 더 많은 소유권을 갖지만 자기 노동이 생산한 부가가치를 대부분 자본가에게 넘겨야 한다. 내 노동으로 만든 것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때 또는 내 것이 나에게 떨어져 나갈 때 나는 ‘소외’를 느낀다. 나는 강제로, 마지못해 일하고, 그 일의 결과는 나에게 떨어져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 나는 내 실존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일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노동을 사고파는 ‘매춘부’로 보게 된다. 이렇게 나는 자연으로부터, 나로부터, 사람됨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외된다. 자본가가 챙기는 잉여 가치는 ‘착취’며 이것은 자본주의 체계 안에 모순을 이룬다. 자본가는 다음 단계의 혁명 동력을 쌓게 하는 자연 현상이다. 자본가에 대항하려고 노동자들은 자기 계급을 깨닫고 단체를 이루게 된다.
프랑스 보르도의 철학자 쟈크엘륄은 “오늘날 마르크스가 돌아온다면, 우리 사회를 특징짓기 위해 그는 어떤 현상을 받아들일까? 그것은 자본도 자본주의도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기술적인 증식 현상이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이 우리 시대의 현상들 전체를 설명하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미지 출처 - 보기)
마르크스는 기술 문명의 두 가지 길을 보여주었다. 노동자 조직이 세계를 다스린다면 기술 문명은 우리를 유토피아에 이르게 할 것이다. 지금처럼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가 계속된다면 우리 삶을 갈아 만든 기술 문명은 우리를 끊임없이 따돌릴 것이다. 자크 엘륄은 처음에 마르크스의 생각들을 따라가며 기술의 문제를 성찰했다. 그는 자본주의보다 더 센 힘을 알게 되었고 1954년 <기술 곧 시대의 쟁점>에서 그것이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술이다. 그는 소련의 공장과 자동차가 미국의 공장 및 자동차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소련이든 미국이든 노동자들은 더 많이 만들도록 몰리고 그들은 삶의 안락을 좇는다. 마르크스에게 생산의 바탕은 사람의 노동이지만 엘륄에게 그것은 자동화와 정보화 기술이다. 그는 기술 자체가 차츰 자율성을 띠게 되어 사람 사회와 비슷한 지위에 오르고 있음을 경고했다. 나아가 사람이 기술을 잘 헤아릴 수 없게 되어 기술은 보이지 않은 신비한 힘을 얻는다. 사람은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에서 벗어나 자연을 섬기는 것을 겨우 멈추었지만 이제는 기술을 섬긴다. 클라라 20190819